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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사에 얽힌 국내외 세 가지 사건

문예림 2018-01-30 조회수 :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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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일지 #1 보라매병원 사건

1997년 12월 4일, 김모 씨가 술에 취해 화장실에 가다 넘어져 병원으로 긴급 이송된다. 사업에 실패한 뒤 직업도 없이 가족들에게 폭력을 일삼았던 김모 씨. 그의 부인은 병원에 남편의 퇴원을 요구했고, 퇴원 후 피해자의 사망에 대해 법적인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귀가서약서를 받은 의료진은 김 씨에 대해 퇴원 조치를 내렸다.

결과적으로 당시 김 씨를 퇴원시킨 의료진은 대법원의 판결에 의해 살인방조죄로 처벌되었다. 물론 살인죄의 주범인 피해자의 부인에게도 집행 유예를 선고했다. 이 사건의 여파로 살아날 가능성이 없는 환자의 퇴원 요구도 잘 받아들여지지 않게 되었고, 안락사와 존엄사의 합법화 논의 또한 더뎌졌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2009년, 안락사에 대한 논의에 불을 붙인 사건이 발생한다. 일명 '김 할머니 사건'이다.


사건일지 #2 김 할머니 사건

2008년 김XX 할머니는 세브란스 병원에서 폐암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조직검사를 받다가 과다출혈로 인한 뇌손상으로 식물인간 상태에 빠졌다. 김 할머니의 가족은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중단하고 인간답게 죽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했으나 병원 측이 이를 거부해 소송을 제기했다. 2009년 5월 21일, 대법원은 김 할머니의 '존엄사'에 대한 최종 판결을 내렸는데, "회복 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이른 환자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에 기초하여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에 연명 치료 중단이 허용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국내에서는 최초로 '존엄사'를 인정한 판결이었다.


사건일지 #3 카렌 앤 퀸란 판결

시간을 거슬러 미국으로 가 보자. '죽을 권리'라는 듣도 보도 못한 말이 최초로 등장한 세기의 판결, 미국 뉴저지 주 1976년 카렌 판결 사건이다.

당시 21세, 마렌 앤 퀸란은 급성 약물중독으로 호흡부전이 발생했고 주치의로부터 회복 가능성이 없다는 선고를 받았다. 생명 유지장치를 부착한 채 비참한 하루 하루를 보내던 딸의 모습을 보다 못한 카렌의 부모는 "인공호흡장치를 제거하고 편히 쉬게 해달라"고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 카렌의 부모는 뉴저지 주 고등법원에 "딸아이가 인간의 존엄에 걸맞은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하도록 하고 싶다"며 '죽을 권리'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으나 "카렌은 아직 살아있다"는 이유로 기각되었다. 그런데 이듬해 3월 31일 대법원은 카렌 부모의 소송을 인정한다는 획기적인 판결을 내렸다. 

"회복 가능성 여부를 판정할 의사단을 선택할 권리를 부여한다. 선택된 의사들이 호흡기를 제거해야 한다고 판단하면 제거해도 좋다. 제거를 결정한 의사, 부모에게도 민∙형사상의 법적 책임을 묻지 않는다."

판결의 과정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말은 '죽을 권리'라는 말. 학교에서든 어디서든 '살 권리'는 들어봤어도 '죽을 권리'는 듣지도 보지도 못 한 것이었고, 전세계는 이 '죽을 권리'가 존재하는가 아닌가에 대한 논쟁을 벌였다. 그리고 작년 10월 23일, 드디어 국내에서도 '죽을 권리'를 인정하는 첫 발을 내딛었다. 환자가 원한다면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는 '연명의료결정법', 이른바 '존엄사법'이 시범운영을 시작한 이래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자가 9천 명을 넘어섰다.


여러분이 카렌의 부모라면, 김 할머니의 가족이었다면, 혹은 죽음을 앞둔 사람이 여러분 자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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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죽을 권리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