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에게, 문제는 돈이다 미리보기
#1.
직업도
없이 세 딸과 남겨지다

1980년대 초, 우리부모님의 이혼은 ‘의식적결별준비’ (커플이호의적인 방향으로 별거나 이혼을 준비하는 과정)와는완전히 달랐다. 보수적인필라델피아 교외에서 이혼은 아주 드문 일이었다. 당시사회는 이혼을 인정하지 않는 문화였고, 이혼에서심리적으로 회복했다는 이야기도 듣지 못했다. 아버지가가출할 때까지 엄마 사전에 ‘이혼’이라는 단어는 전혀 없었다.

엄마는 자신이 성장기를 보낸 1950년대 기준으로보면 모범적인 여성이었다. 그녀는가족을 사랑하는 근면하고 알뜰한 가정주부가 되도록 교육받았다. 유복한가정에서 자란 엄마에게 성공적인 인생의 의미란 명확했다. 시집잘 가서 현모양처로 사는 것이었다. 엄마또래의 다른 여성들이 그러하듯. 그러면안전하고 편안한 삶을 보장받고, 개인적으로성취감도 느낄 수 있었다.
심지어 우리 엄마처럼 대학 교육을 받은 여성들조차도 ‘좋은신랑감을 만나 결혼’하는 것이 일생일대의 목표라고 생각했다. 그러니이혼했을 때 엄마는 단순히 남편만 잃은 것이 아니었다. 정체성도상실했다. ‘귀하게 대접받다’가 갑자기 버림받는 신세가 되었다.
직업도 없이 세 딸과 함께 덜컥 남겨지자 엄마는 충격을 받았다. 엄마가수년 동안 쌓아 왔던 토대가 몇 달 만에 무너져버렸다. 나는엄마가 어두운 침실에서 침대 끝에 걸터앉아 우는 모습을 자주 목격했다. 그러던어느 날, 엄마는내 앙상한 팔을 잡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언제나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어야 한다."

내 이야기에서 첫 번째 주제는 바로 이것이다. 아버지와남편은 당신을 구원하지 못한다. 심지어그들은 곁에 있어 주지도 않는다. 그러므로독립하고 돈을 많이 벌어서, 집과차를 직접 사라. 상처를치유하려면 잘 먹고 잘살아야 한다.
어느 날 엄마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혼녀의모습을 지우는 데는 여러 해가 걸렸지만, 막상홀로 섰을 때 엄마는 깜짝 놀랄 만한 결심을 했다. 1960년대에 엄마는대학에서 수학과 물리학을 전공했고, 심지어컴퓨터 프로그래밍도 배웠다. 엄마는드렉셀 대학교 경영대학원에 진학해서 정보처리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은 후, 우편주문을 받아 개인용 컴퓨터를 조립해서 판매하는 직장에 취직했다. 우리집 창고에는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가 장착된 CPU와 진한베이지색 모니터, 컴퓨터조립부품들로 가득 찼다. 그이후에 엄마는 좀 더 나은 직장을 찾아 필라델피아 증권거래소의 전산 업무 지원센터에 취직했다.
엄마는 마흔두 살에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짜잔. 엄마는리셋 버튼을 눌렀고, 게임은 다시 시작되었다.

다섯 살 때 어머니에게서 들은 충고는 내게 북극성과도 같았다. 그리고이 충고는 내 정체성의 핵심이 되었다. 나는다른 사람이 나를 보호해주리라 기대하지 않았다. 나를책임져 줄 남자(혹은직장 상사)가나타나기를 간절히 바라지도 않았다. 그런삶은 마치 교도소 같았다.
맨해튼 칼리지 4학년때, 나는대학교직원용 데이터베이스를 관리하면서 시간당 40달러를 받고있었다. 이돈은 당시 대학생에게 대단히 큰 액수였다. 나는남들보다 일찍 휴대폰을 사고 카리브 해 세인트바르트로 즉흥 여행을 떠나는 사람 중 하나였다.
내가 졸업하던 1999년은 사람들이폭발적으로 인터넷을 사용하기 시작한 시기였다. 그때나는 보스턴 소재 웹사이트 프로그래밍 회사의 CEO를 찾아가 뉴욕 지점을 열게 해달라고 설득했다. 그는내가 너무 어리다고 걱정했지만, 나는개의치 않고 결국 지점을 열었다. 이제진짜 돈을 벌게 되었다.

여자들에게, 문제는 돈이다
어맨다 스타인버그 지음, 최이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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